태안반도의 유명한 해수욕장인 신두리와 학암포 해수욕장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만날수 있는 옥파 이종일 선생님의 생가터에 자리잡은 작은 공원으로 기념과과 사당 , 그리고 6.25. 해외 참전 국가 군인들의 호국영령탑이 같이 있다.
해안으로 가기전 잠깐 둘러보며 쉬었다 가기 좋은곳 이다.
작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어 잠시 휴식하면서 가기 편하다.
기념관과 사당.
옥파 이종일 (언론인 , 독립운동가)
1919년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보성사에서 독립선언서를 인쇄·배포했으며, 천도교의 지하신문인 〈조선독립신문〉을 창간했다. 3·1운동으로 3년형을 선고받았으나 2년 6개월 만에 가출옥했다. 1922년 3월 1일 다시 천도교 단독으로 제2의 3·1운동을 일으킬 것을 계획했으나 발각되어 실패했다. 이후 조선국문연구회(朝鮮國文硏究會) 회장으로 한글맞춤법을 연구하는 한편 3년간 〈한국독립비사〉를 집필했으나 일본경찰에게 압수되었다. 7개의 학교장을 역임했으며 교육자이기도 하다.
1898년 3월에는 이승만(李承晩) 등과 함께 〈경성신문〉을 창간했으며, 8월에는 순한글신문인 〈제국신문〉을 창간하고 사장으로 취임했다. 〈제국신문〉은 독립협회 여성회원들의 홍보지로서 민권운동과 여성의 사회참여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밖에 〈황성신문〉·〈만세보〉와 대한협회의 기관지인 〈대한민보〉 등에도 관여했으며, 필화사건으로 여러 차례 투옥되었다. 제2의 3.1운동을 계획하며 2번째 독립선언서를 인쇄 하던중 발각되어 옥중 순직하게 된다.
독립 선언문 인쇄로 투옥 당시 기사 2번째 3.1운동을 계획하며 2번째 독립선언문을 인쇄하다 발각되어 순직하게 된다.
첫번째 3.1. - 자주 독립선언문 두번째 독립선언문은 당시 압수되어 자세한 기록이 없다.
독립 선언문 활자판 이종일선생님은 국민 계몽사상에 관심이 많아 당시 책의 인쇄 기술에 상당히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실제 생가는 큰 볼거리는 없고 작은 초가집으로 원래 터에 새로 복원이 되었다.
생가와 함께 조성된 6.25참전 국가들의 군인들을 위한 호국영령을 위한 탑.
634번 국도변에 위치한 공원으로 신두리나 학암포 해수욕장으로 갈때 잠깐 역사 공부도 하고
공원의 잔디밭에서 도시락 먹으며 잠깐 쉬어가기 좋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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